제가 사는 동네는 부자 동네도 번잡한 동네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도 인심이 넘칩니다. 마치 제가 어릴적 어르신들이 이웃에 있는 숟가락 갯수까지 서로들 헤아릴 정도로 이웃과의 정이 돈톡했던 시골 생각이 날 정도로 화목한 동네입니다.

 요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많이 없어졌지만, 옆집에서는 가끔 아이도 봐주시고, 앞동에 사는 집사람과 동갑내기 친구는 항상 먹을 것을 하면 나누어 먹고, 집사람도 시골에서 가져온 감자나, 양배추 등이 있으면, 이웃에 골고루 나누어 주기도 하며, 그렇게 필요한 것들은 서로 빌려쓰고 나누어 쓰는 동네입니다.

집사람과 다른 애기 엄마들은 가끔은 주말에 어는 한집을 골라서 그집에  모여서 통닭도 시켜서 나누어 먹고 아이들 이야기, 남편들 이야기를 하곤 한답니다.

이번 이사할때도 영서는 유치원에 갔지만, 현서는 아직 어려서 누가 봐줘야 하는데, 이사 하는 것을 알고 서로들 봐주신다고 하셔서 이사가 얼마나 수월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다정다감한 분위기가 좋아서 저도 아직 이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이사를 바로 옆집으로 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늦은 이시각에(바로 조금전입니다.)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애기 엄마는 아이들과 잠이 들었고, 저는 씻고 있는 중이어서 급하게 나오긴 했지만, 문밖에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구신지 물었더니 위집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실 윗분의 경우 저는 딱 한번 보았습니다. 무척 선하게 생기셨고, 갓난 쟁이 애기가 있었습니다. 대화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그저 인사만 한번 나누었으며, 비록 같은 동이기는 하지만, 이사를 온 것은 우리집이었고, 인사를 해도 먼저 했어야 했는데, 오늘 윗집 아저씨가 직접 봉지 하나를 내놓으시면서 시골에서 포도를 조금 가지고 왔는데, 드셔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씻다가 허둥지둥 문을 열어주게 된 탓인지 이밤중에 누가 초인종을 누르나 하고 약간 신경질까지는 아니었지만, 짜증정도는  날려는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선한 웃음과 함께 내 앞에 내밀어진 포도 한봉지는 그런 모든 마음을 사르거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주세요..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제가 씻다보니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좀 늦었습니다."

" 아닙니다. 네 송이 밖에 안됩니다. 괜찮습니다 시골에서 가져온 건데 맛이 좋습니다. 어제 드리려 했는데, 집이 비어 있어서 오늘 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오신 분을 빈손으로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너무 감사해서 어떡하죠..전 지금 드릴 것이 없는데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잘먹겠습니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갔지만 그 대화속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음을 서로 알수 있었을 듯 합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좋은신 분이고, 자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열어본 포도 봉지 속에는 통통하게 살이찐 머루 포도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고맙고 즐거운 밤이 될 듯 합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 인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나라가 살만한가 봅니다.
Posted by 달룡이네집